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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공간: 브라질
기간: 2025.11.18.화 ~ 12.31.수 장소: 시네마테크KOFA

'영화와 공간'은 영화를 통해 아이코닉한 로케이션으로 여행할 기회를 관객에게 제공하기 위한 기획전 시리즈다.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영화들이 모였을 때 하나의 '공간적 초상화'가 형성되어 관객이 마치 그곳을 직접 방문한 듯한 생생한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 목적지, 브라질로 향한다.
'영화와 공간: 브라질'은 활기찬 브라질 영화의 세계를 조망하는 작품들을 통해 풍부하고 다층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이 작품들은 브라질 영화의 지속적이고도 풍성한 유산을 기념하며, 스크린을 통해 브라질의 현실과 상상 속 공간을 함께 거닐도록 초대한다. 본 프로그램은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섹션은 서로 다른 프로그래머가 기획을 맡아 고유한 시각을 선보인다.
파노라마
'파노라마(Panorama)' 섹션은 80여 년에 걸친 브라질 영화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10편의 뛰어난 작품들을 통해, 브라질 영화의 다양성을 한눈에 조망할 기회를 제공한다. 마리우 페이쇼투의 실험적 무성영화 <리미테>(1931), 안셀무 두아치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산타 바바라의 맹세>(1962), 바우테 살리스의 감동적인 로드무비 <중앙역>(1998), 페흐난두 메이렐리스와 카치아 룬지의 아이코닉한 범죄 서사극 <시티 오브 갓>(2002)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들이 상영된다. 또한 리마 바헤투의 브라질식 서부극 <도적>(1953), 알베투 카발칸치의 유쾌한 코미디 <진정한 여자>(1954), 수자나 아마라우의 여성 성장 영화 <별의 시간>(1989) 등 재발견된 보석 같은 작품들도 포함된다. 여기에 클레베 멘돈사 필류의 인상적인 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2012), 주앙 두만스와 아폰수 우쇼아의 방랑하는 영혼들에게 바치는 서정적 작품 <애러비>(2017), 그리고 안드레 노바이스 올리베이라의 고향 콘타젱을 향한 시적 헌사 <템포라다>(2018)까지 함께 소개되며, 이 작품들을 통해 브라질 영화의 매혹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네마 노부 & 시네마 마지날
이어지는 두 섹션은 브라질 영화사를 더욱 깊이 탐구하며, 각각 중요한 영화 운동을 조명한다.
'시네마 노부(Cinema Novo)' 섹션은 시네마테카 브라질레이라(Cinemateca Brasileira)의 호베투 지 프레이타스 소아리스(Roberto de Freitas Soares)가 큐레이션을 맡아, 1960년대의 시네마 노부 운동의 대표적인 11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글라우베 호샤, 조아킴 페드루 지 안드라지, 레옹 힐스만 등 브라질 영화사 거장들의 작품들이 포함된다.
'바보들의 선언: 시네마 마지날과 그 너머(Declaration of Fools: Cinema Marginal and Beyond)' 섹션은 시네마테카 카피톨리우(Cinemateca Capitolio)의 레오나르두 봄핌(Leonardo Bomfim)이 기획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전개된 시네마 마지날 운동을 탐구한다. 이 섹션은 해당 운동과 관련된 다섯 편의 영화, 그리고 앞선 작품들과 공감대를 이루는 다섯편의 영화, 그리고 봄핌의 큐레이션에 영감을 준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1983)을 특별 상영한다. 두 큐레이터는 각 섹션과 선정작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제공했다.
'영화와 공간: 브라질'은 총 31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국내에서 개최된 브라질 영화 회고전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중 25편은 국내 최초 상영작이다. 이번 회고전이 가능했던 것은 프로그래머 호베투 소아리스와 레오나르두 봄핌의 전문성, 시네마테카 브라질레이라와 시네마테카 카피톨리우에 근무하는 아키비스트들의 헌신,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영감을 주고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작품들을 창조해낸 영화인들 덕분이다. 이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은 한 나라의 영화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기억'과 '시간의 결' 속으로 스며들게 될 것이다. 수십 년의 시간이 포개진 브라질 영화를 통해, 관객이 그들의 빚어낸 매혹적인 세계를 스크린에서 직접 체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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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Young Jin Eric Choi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래머
'시네마 노부' 섹션 소개
1960년대에 등장한 영화 운동 시네마 노부(Cinema Novo)는 비판적 리얼리즘을 통해 브라질 영화 언어를 새롭게 하고, 사회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작가주의(politique des auteurs)를 표방하고, 저예산 제작과 기존 산업 영화의 형식적 관습을 거부한 점에서 두드러졌다.
이 운동은 브라질 사회가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던 때 등장했다. 1960년대 브라질은 급격한 도시화와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소수의 부와 다수의 빈곤이 극명히 대비되었다. 1964년 군사 쿠데타 이후에는 억압적인 독재 정권이 들어서며 시민적·문화적 자유가 크게 제한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시네마 노부의 감독들은 상업 영화에서 보이지 않던 주변부의 삶과 노동계급의 현실을 주목하며, 브라질 사회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브라질만의 독창적 예술 형식을 모색한 시네마 노부는 기존의 전통적 내러티브, 즉 선형적 구성과 매끄러운 편집, 거부하고,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형식을 선호했다. 제작 여건의 제약은 오히려 미학적 창의성을 자극했고, 가난과 결핍을 예술적 힘으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정신은 글라우베 호샤(Glauber Rocha)가 제시한 '배고픔의 미학(Aesthetics of Hunger)' 으로 집약된다. 그의 말처럼, "머릿속엔 아이디어, 손에는 카메라"만으로도 사회의 불평등과 억압을 드러낼 수 있었다.
시네마 노부는 이전 세대의 샨샤다(chanchada, 1930~50년대의 뮤지컬 코미디) 중심 스튜디오 영화에 맞서며, 동시에 유럽 각국의 뉴웨이브 운동과도 긴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운동은 보통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1960년대 초중반)는 사회적 불의와 빈곤을 고발하며 ‘배고픔의 미학’을 탐구한 시기다. 두 번째 시기(1960년대 말)는 정치적 참여 의식이 한층 분명해지고, 서사와 기술적으로도 세련된 표현이 등장했다. 세 번째 시기(1970년대)는 검열과 제작 제한 속에서도 은유, 상징, 시적 언어를 통해 사회적 문제의식을 유지했다.
시네마 노부는 브라질 영화의 언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정치적 참여와 형식적 혁신을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 영향은 후대 감독들에게 이어졌으며, 브라질 영화를 세계 영화사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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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베투 지 프레이타스 소아리스
Roberto de Freitas Soares
시네마테카 브라질레이라 프로그래머
'바보들의 선언: 시네마 마지날 그리고 그 너머' 섹션 소개
시네마테크를 방문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서울에 짧게 머무는 동안 한국영상자료원을 방문했을 때, 한국 영화와 브라질 영화 사이에 놓여 있던 뜻밖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최영진 프로그래머와 함께 브라질 시네마테카 카피톨리우(Cinemateca Capitolio)에서 복원한 작품 <하나는 적고, 둘이면 충분하다>(오질롱 로페스, 1970)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이 작품이 <바보선언>(이장호, 1983)과 놀라운 공명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특히 유머와 실험정신이 어떻게 억압적 체제 속에서 정치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말이다. 이장호 감독의 혼돈스럽고 활력 넘치는 세계를 더 깊이 탐구할수록, 그 연결은 더욱 확장되었다. 그 중심에는 바로 1960년대 군사독재 시기에 등장한 ‘시네마 마지날(Cinema Marginal)’ 이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바보선언>을 통해 브라질 영화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다면 어떨까?”
1960년대 후반은 전 세계적으로 “단절 속의 단절”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각국의 뉴 시네마(New Cinema) 운동이 신선한 혁신을 불러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흐름 안에서도 더욱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젊은 세대가 등장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브라질에서는 시네마 마지날이 시네마 노부 이후 등장한 ‘두 번째 물결’ 로 간주된다. 1967년부터 1972년 사이, 대담하고 논쟁적인 작품들이 잇따라 발표되며 브라질 영화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호제리우 스간제흘라(Rogerio Sganzerla), 줄리우 브레사네(Julio Bressane), 오주알두 칸데이아스(Ozualdo Candeias), 칼루스 헤이킹바(Carlos Reichenbach), 안드레아 토나키(Andrea Tonacci) 등은 B급 영화, 일본 누베르바구, 브라질 고전 코미디, 그리고 유럽의 뉴웨이브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존 질서를 조롱하고 해체하는 파격적 접근으로 브라질 영화를 다시 흔들었다.
이 세대는 짧지만 강렬했다. 1969년 이후 독재정권의 탄압이 심화되자, 영화들은 점점 더 실험적으로 변했다. 언어는 파편화되고, 절규와 신음, 음담패설과 무의미한 반복으로 가득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절망한 바보들의 선언’ 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유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훨씬 더 공격적이고 날선 형태로 변모했을 뿐이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검열과 정치적 박해로 많은 감독들이 망명하거나 영화를 포기했다. 일부만이 창작을 이어갔다. 시네마 마지날은 비행 도중 끊겨버린 운동이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브라질 영화 속에서 그들의 자유분방한 실험정신과 저항의 에너지가 계속해서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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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두 봄핌
Leonardo Bomfim
시네마테카 카피톨리우 프로그래머
[기획전 소개]
* 11월 18일(화) 16:00 <애러비> 상영 전 (최영진,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래머)
* 12월 2일(화) 19:00 <고뇌하는 땅> / 12월 6일(토) 12:00 <상베르다느두> 상영 전 (호베르토 소아레스, 시네마테카 브라질레이라 프로그래머) [녹화]
* 12월 12일(금) 17:00 <가장자리> / 12월 13일(토) 13:00 <모두의 여자> 상영전 (레오나르두 봄핌, 시네마테카 카피톨리우 프로그래머) [녹화]
[ORIGINAL ENGLISH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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